강정의 눈물 걸으면서

 

평화비행기가 뜨기 하루 전, 9월 2일 13시 5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름의 막바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하늘은 대체로 맑았고,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바다도 푸르기 그지 없었다. 비행기 안에 우리를 뺀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제주여행을 가는 사람들이리라. 기분 좋고 평화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다지 평화스러울수만은 없었다. 이미 육지의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강정마을을 에워쌌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강정마을은 제주특별자치시의 중문 관광단지와 서귀포시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어촌마을이다. 강정마을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서귀포시까지 40여 분정도가 걸린다. 강정마을 앞바다에는 잘 알려진대로 1.8km에 달하는 구럼비 바위가 있다. 제주 '올레길'은 이 구럼비 바위를 지난다. 그리고 멸종위기 생물에 들어있는 '붉은말 말똥게'가 살고 있고, 천연기념물인 '연산호군락'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는 날 새벽에 경찰은 농성장을 진압하면서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을 펜스를 설치해 막아버렸다. 결국 구럼비 바위를 볼 수 있으리라는 나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런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국가의 결정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댜. 그러니까 참여정부 시절에 이른바 '해양대군'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때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해군은 강정, 위미, 화순, 월평 등 8개 후보지역을 놓고 ▲항만 입지 ▲배후지 여건 ▲문화재 현황 ▲어업권 평가 등 4개 항목에 대해 평가등을 놓고 저울질 하다가 결국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로 결정했다.

 

그것은 2007년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일방적인 유치결정 때문이었다. 그해 5월 14일 김태환 도지사는 도청출입구 문을 걸어잠그고 일방적으로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그 전에 기지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화순과 위미 지역에서는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쳤던 터였다. 그렇다면 강정마을 해군기지 결정의 원죄는 '참여정부'로 보아야 하는가? 참여정부(지금은 당시의 핵심적인 인사들이 되겠지만)역시 강정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참여정부도 해군도 애초에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예정지나 후보 순위에도 올려놓지 않았다.

 

그러나 해군은 화순과 위미 지역이 반대하며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도지사의 강정마을 선정을 급하게 받은 것이다. 그것은 당시 제주도의회의 해군기지안건에 관련된 법안처리 과정과 절차 역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통과시킨것과 맞물려 있다. 강정마을은 특별법상의 '절대보전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절대보존지역은 건축물의 건축, 시설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공유수면의 매립등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이미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호구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제주의 전체면적 중에서 10%에 해당하는 절대보존지역에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생태계 변화요인이나 환경의 변화요인이 없음'을 이미 정부당국에서 조사. 검토(2004)했음에도 절대보존지역을 무리하게 변경시켜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정마을 주민들은 과연 찬성하였는가? 2007년 4월 26일에 강정마을에는 대표성이 없는 80여명의 주민이 '마을임시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1200명의 주민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규약위반이었다. 이에 주민들은 8월 10일 주민 436명이 참가한 가운데 마을임시총회를 열고 유효투표수의 95.4%인 416명의 찬성으로 마을이장을 해임시켰다. 그리고 8월 20일에 해군기지 찬반투표를 실시하여 725명이 참가한 가운데 94%인 680명이 유치에 반대하였다. 결국 비민주적으로 강행처리 되었던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안은 주민들의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폐지된 것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공사계약에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되어있다. 즉 해군부두 옆에 크루즈 터미널을 만들고, 해안에는 해양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군기지 예산은 9770억원인데, 민간시설 예산은 534억원으로 무려 18배나 차이가 난다. 따라서 '민군복합형'이라는 말은 해군기지를 위한 설레발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든다는 배경은 참여정부의 '대양해군'정책이다. 말라카 해협을 통해 동지나해를 거치는 해양루트를 보호하기 위해 전략기동함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안보', '중국 견제'. '해운선 방어'등의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리는 억지와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애초에 남방수역은 해경 담당이다. 전시가 아닌 한 대부분의 함대는 북한수역과 대한해협(진해 해군기지)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남방수역에 해군기지를 만들 필요도 없고 돈도 없는 것이다. 이미 이어도에 중국 관선이 들어와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함에 따라 이미 서귀포항만에 해경기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강정해안은 서귀포에서도 가까운 거리다. 더구나 강정해안은 군사기지로는 좁은 편이며, 무엇보다 완전 개방형이라 잠수함의 기습이나 정밀타격병기에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된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과 기지의 형태에 빗대보면 '섭천 소'가 웃을 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평화'라는 문제에 대해 사회구성원의 합의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 따라서 한국전쟁결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여러 화두(환경보호, 절차적 정당성, 안보의 민주화, 공동체 보전)가운데 '평화의 섬'논리에 대해서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식의 팍스 로마나 시대의 구절을 인용해 응수한다."(창비주간논평) 이미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4.3의 통곡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곳이다. 그런 섬에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군사기지를 만들겠다는 주장과 논리는 대체 어디서 배워 처먹은 버르장머리인가.

 

정부당국은 육지에서 600여명의 경찰병력을 끌고 들어가 완전무장시켜 강정마을을 점령하고 있다. 4.3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제주도민들은 무엇보다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 분노하고 있다. 그럼에도 400여명의 추가병력을 끌고 들어가겠다고 한다. 미친 놈들이다. 가보면 알겠지만 강정마을은 정말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이다. 주로 감귤농사를 비롯해 바다와 땅을 생명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런 마을을 정부당국은 무력을 앞세워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정현 신부는 공사현장 앞에서 날마다 평화미사를 집전해 왔는데, 경찰병력은 이것마저 때려부숴버렸다. 문정현 신부와 문규현 신부를 비롯하여 사제들은 강정마을 삼거리로 옮겨 날마다 '생명평화미사'를 집전하고 경찰차벽 앞에서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중덕삼거리 농성장에는 마을 출신이면서 마을로 돌아와 살고 있던 주민 고권일씨가 대책위원장을 맡아 망루 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현애자 민주노동당 전의원이 몸을 쇠사슬로 묶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시민사회, 평화활동가와 주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연 강정의 평화는 회복될 수 있을까. 이 땅의 평화는 권력이 아니라 땅을 일구고 일하는 백성들이 지켜왔다. 강정마을의 주민들은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한 채 울음을 삼키고 있다. 많은 주민들이 자살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고 한다. 평화롭던 강정이 울고 있는 것이다. 강정에 가야 하는 까닭이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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